Beyond Landscape
Insun Jang
2022.02.10 - 2022.03.06
기억과 감정이 발화되고 소멸되는 시간과 장소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작업은 시작된다. 사적인 경험과 감정들이 뒤섞인 시간과 장소를 다시 불러오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공간의 ‘풍경’으로 나타나며 이 풍경이 타인의 시선과 맞닿을 때 나타나는 우연적인 공감과 확장되는 의미들을 기대한다.
내가 바라다보는 풍경은 적막하고 조용한 정서와 닮아있다. 습기 가득한 대기, 차가운 공기, 오후의 빛, 해질녘의 조명 속 침묵과 고요는 도시를 배회하며 사색하는 시간으로 나아가게 한다. 밝고 유쾌한 감정보다는 삶의 고뇌와 조용한 성찰에 가까우며 찰나의 감정, 기억, 오래된 생각의 조각들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이다. 어느날 이를 ‘풍경의 온도’라고 이름짓게 되었고 서로 다른 풍경의 온도와 마주하며 삶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늘 내가 작업을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려낸다는 것은 결국 세상에서 예상치 못하게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이 서사가 되어 그 속에서 끊임없이 삶을 이해해 가려고 하는 방법이 되었다.
최근의 작업은 구상과 추상 작업으로 나뉜다. 영국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있는 구상 작업은 몇년간의 일상에서 마주한 시공간들이 예상치 못하게 나의 사고와 감각을 사로잡고 끊임없이 기억하게 하는데서 비롯되었다. 고유함 속에서도 수많은 문화가 혼재되어 녹아있는 장소와 시간의 온도를 작업에 담았다. 시선이 가는 장소들, 시간, 그리고 그곳에 존재했지만 더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려내며 작업은 새로운 시공간의 풍경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작업의 과정을 통해 사유하게 되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풍경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기까지 이면의 역사를 따라 흘러온 시간의 궤적과도 같다.
추상 작업은 도시에서 만나는 빛과 어둠, 대기의 온도, 속도, 색의 요소들이 감정과 맞닿아 추상의 화면으로 표현된다. 캔버스 위에 색과 붓질이 해체되고 결합하며 펼쳐지는데 이는 몸의 움직임, 붓질, 속도, 물질감, 반복과 변이의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공간 안에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내면으로부터 발화되는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일상에서 혹은 낯설게 마주하는 시간과 장소를 통해 사유의 공간을 확장시켜 나간다. 내제된 기억과 감정이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계를 맺으며 좀더 직관적이고 느낌 자체로 보여주는 과정이다.
우리는 모두가 어느 시간과 어떤 장소에 있다는 사실 속에서 ‘그 곳’,’그 때’ 만이 줄 수 있는 생각, 감정, 그리고 감각같은 것들이 있다. 도시를 걷는데에는 어쩌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번잡하게 어지럽혀진 생각들을 비워내는 일상의 한 과정이다. 고요하게 마주하는 시간과 장소들은 별것 아닐 수 있었지만 거대한 풍경이 되어 장소와 시간을 너머 그 이상의 감각으로 나를 사유하게 한다. 일상을 살아내며 마주하는 풍경들은 기억과 감정의 프레임을 통해 거대한 서사로 돌아오고 그 속에 녹아있는 역사와 현재의 간극을 들여다보게 한다. 어느 순간은 초감각적인 방식으로 다가온다. 작업으로 나타나는 풍경은 사유를 통해 그 너머의 감각들을 담아내는 과정이며 천천히 시간을 통과해 쌓여서 이루어진 풍경처럼 한겹 한겹 레이어를 만들고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그 온도를 느끼며 살아가는 오늘의 풍경을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