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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lize

Jeong Seyeon

2022.05.19 - 2022.06.02

담론을 허락하지 않는 <무제>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제목의 존재는 관객으로 하여금 좀 더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길라잡이의 역할을 한다. 33가지 향료를 사용했다 해서 이름에 고유 숫자를 넣어 브랜드의 가치를 완성하는 한 니치 향수의 브랜드 철학처럼, 정세연 작가는 원작에 인위적 보정을 가한 횟수를 제목에 적어 놓음으로써 본인의 작업 의도를 관철시킨다.

 

잘 알려진 고전적인 명화를 왜곡시킨 작가의 의도는 그녀가 선택한 메인 기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행위에는 창작자 혹은 당대의 이상형(ideal figure)이 담기기 마련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 대한 기준이 변모한다는 작가의 의견은 푸어링 기법을 통한 우연의 왜곡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연에만 맡긴 표현기법으로만 보면 안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도적으로 수천 번의 붓질을 한 흔적이 남아있다.

 

작가는 몸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만 남겨두고 여성의 나체를 지워버림으로써 당대의 관음적 행위가 현대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한다. 살롱에서 커튼을 가로하고 특권 계층만 향유했던 여성 나체에 대한 시선과 당대의 미적 기준 등이 현대의 감성과 맞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당당하게 어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서도 작가는 왜곡된 흐름으로 그림을 구성하며 현대의 미감에 대한 시각적 결론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현대의 시선에서 보정한 ideal figure도 결국에는 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푸어링 기법으로 당대의 이상형(ideal figure)이 현대에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피력함과 동시에, 시간은 끊어낼 수 없기에 역사적으로 미의 기준이 변모하고 있다는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그림과 다르게 이 그림은 원본에 대한 이해가 필수 불가결의 요소이다. 이는 앞서 서술했듯이 과거와 현대는 끊을 수 없는 연결지점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다고 원본 고전 미술에 대한 미학적인 상세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기법을 통해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 특정 수준의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그림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과거 특권 계층이 향유했던 감상 문화를 다시 한번 부정하고 모두가 감상할 수 있는 현대의 미술 현황을 친절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세연 작가의 작업들은 원본 없이도 그림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비교를 통해 작품의 해석이 한층 풍요로워질 뿐이다.

 

정세연 작가의 작품은 현대의 미감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더욱이 미의 기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을 내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관객으로 하여금 이 뒤틀린 형체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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