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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마주하기

Tae Haeyoung, Hyejin

2022.01.11 - 2022.01.30

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개인의 서사를 <서랍>으로 설정한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서랍이 존재하며 그 형태는 무궁무진하다. 쉽게 열리는 서랍이 있는가 하면, 잠겨있는 서랍도 있다. 이 서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열람권은 서랍의 주체인 본인에게 있다. 서랍의 주인은 열람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해 줄 수도,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조차 자신의 서랍을 모두 파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서랍 속을 내보이는 것은 온전한 상호 간의 신뢰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서랍 마주하기>는 혜진과 혜영이 서로의 서랍을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둘은 서로에 대한 얕고 넓은 지식에서 더 나아가 이번 전시를 통해 비로소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 보며 상대의 서랍을 열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막연히 서로의 서랍이 닮았다고 생각했던 둘은 열어보니 닮지 않았음을 마주했다. 그래서 혜진과 혜영은 공간은 틀로, 그림은 칸으로, <서랍 마주하기>展을 ‘제3의 서랍’으로 설정한다.

 

‘제3의 서랍’은 전시임과 동시에 ‘끼워 맞추기’의 현장이다. ‘끼워 맞춘다'는 것은 두 작가가 가장 빈번하게 경험하는 장면으로 현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끼워 맞추기'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끼워 맞추기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공간의 배치로 가시화함으로써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소통을 제안한다.

 

혜진의 서랍은 아주 작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긴장의 이유를 담고 있다. 가벼운 불안들이 모여 무게를 더하고 이를 반복한다. 이 출처를 알지 못하는 긴장의 이유를 추적하려 희미해진 과거의 기억과 사물을 쌓아 올린다. 반쯤 잊힌 기억을 복기하는 과정에 당시의 사물을 다시 마주하게 되고 하나씩 주워 쌓아 올린다. 지나온 모르는 길을 되돌아갈 때 바닥에 둔 돌을 길잡이 삼아 걸어가는 것처럼 혜진은 회피하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되짚어 본다 .

 

혜영의 서랍은 본인의 이상향을 대변하는 대상인 청산을 잘라낸 조각을 서랍의 형상으로 나타낸 것이다. 서랍을 열어보는 것은 작가에게 두려움을 상징하는 붉은색을 더욱더 깊숙이 탐색하는 과정이며, 붉은색의 카테고리를 더욱 세분화시키는 작업이다. 이것은 기존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음을 의미한다.

[혜영의 서랍]

본 작업은 개인적인 두려움을 지칭하는 ‘붉음’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하여, 두려움을 상쇄시키고자 하는 용기를 담은 ‘청색’과 함께 색의 의미를 확장시키며 «청산»이라는 상징에 개인의 이야기를 입혀냈다. 본인에게 청색은 자신과 반대되면서 동시에 이상적이다. 그와 반대인 붉은색은 개인의 두려움과 동시에 밀어내고자 하는 존재이다. 붉은색을 멀리 밀어내며 청산을 바라보기만 하던 본인에게, 청산에 대한 호기심은 자신의 이상향인 청산을 잘라보는 용기로 이어져, 대상을 이리저리 잘라보며 속을 탐색하게 된다. 청산을 자르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용기를 내었고, 그 결과 청산의 무수히 해체된 붉은 단면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피하고자 했던 붉은색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자신의 고민들과 선택들도 결국 본인 자체였음을 깨닫는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자르는 행위의 반복이 용기를 요구했던 것처럼, 밀어냈던 존재를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본인을 탐구해나가는 거대한 과정 속의 일부이다.

 

 

[혜진의 서랍]

혜진은 «가마귀 동산»이라는 돌탑 안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여기서 ‘가마귀 동산’은 자신의 언어를 담아내는 대상이다. 모든 이야기는 돌탑 쌓기에서 시작한다. 그냥 돌 쌓는 것이 좋아서 각각의 돌탑을 그리고 돌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언제나 ‘그냥’이라는 단어에는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담겨있다. 이 작업은 항상 ‘그냥’이라며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았던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시도이며 이 이야기들로 가마귀 동산 안을 채운다. 지금의 돌탑은 마을 공동체의 염원을 담고 있는 공동체적 돌탑보다 길목에 하나둘씩 두고 가는 개인적인 돌무더기에 가깝다. 돌을 쌓아 올리는 것은 블럭 쌓기와 같은 단순 흥미임과 동시에 어떠한 장소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이 돌탑 안에는 숨고 싶지만 숨기고 싶지 않았던 남겨진 흔적을 모으는 과정을 담는다. 모두의 각기 다른, 어쩌면 의미 없는 흔적을 담은 돌탑들처럼 익명이었던 ‘나의 돌탑’에 담긴 사소한 서사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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